형사
내 통장에 갑자기 들어온 돈! 사용하면 무조건 처벌?본문
1. 기초 사실 및 원심의 판단
어떤 예금계좌에 금전이 착오로 잘못 송금되어 입금된 경우 수취인과 송금인 사이에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수취인이 그 돈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자신의 계좌에 모르는 돈이 들어오는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놔두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우 말고, 내가 상대방에게 원래부터 받을 돈이 있었다면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돈을 인출해도 횡령이 성립하지 않을까요? 관련한 최근 대법원 판결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甲은 주류업체인 주식회사 A의 사내이사로, 乙과 주류 납품거래를 해왔던 사람이었습니다. 甲은 乙을 상대로 주류대금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민사 분쟁 중 2019. 9. 30. 乙로부터 甲이 관리하는 A 명의 계좌로 4,700,000원을 송금받아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 대금은 乙이 주식회사 B에 송금하려고 했던 대금으로, 계좌번호 착오로 甲에게 송금한 것이었고, 甲은 2019. 10. 1. 乙로부터 위 대금이 착오 송금된 금원이라는 사정을 문자메시지를 통해 고지받아 위 금원을 반환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甲은 乙과 상계 정산에 관한 합의 없이 甲이 주장하는 주류대금 채권액인 1,108,310원을 임의로 상계 정산한 후 반환을 거부하였습니다.
원심은, 乙이 甲에게 착오로 송금한 금전에 관하여 甲과 乙 사이에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인정되는 이상 목적이나 용도를 한정하여 위탁된 금전과 마찬가지로 甲이 임의로 상계할 수 없다고 보아, 甲의 행위는 횡령죄의 구성요건인 ‘반환의 거부’에 해당하고 불법영득의사도 인정된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대법원에서 파기되었는데요 대법원 판단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대법원의 판단
가. 형법 제355조 제1항에서 정하는 ‘반환의 거부’란 보관물에 대하여 소유자의 권리를 배제하는 의사표시를 하는 행위를 뜻하므로, ‘반환의 거부’가 횡령죄를 구성하려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단순히 반환을 거부한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반환거부의 이유와 주관적인 의사들을 종합하여 반환거부행위가 횡령행위와 같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이어야 한다. 횡령죄에서 불법영득의 의사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취지에 반하여 정당한 권원 없이 스스로 소유권자와 같이 이를 처분하는 의사를 말하므로 비록 반환을 거부하였더라도 반환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도126 판결, 대법원 2002. 9. 4. 선고 2000도637 판결, 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4도11552 판결 등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甲이 乙의 착오로 A 명의 계좌로 송금된 금전 중 A의 乙에 대한 채권액에 상응하는 부분에 관하여 반환을 거부한 행위는 정당한 상계권의 행사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甲의 반환거부행위가 횡령행위와 같다고 보고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1) 어떤 예금계좌에 금전이 착오로 잘못 송금되어 입금된 경우 수취인과 송금인 사이에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성립하기는 하나(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이유만으로 송금인이 착오로 송금한 금전이 위탁자가 목적과 용도를 정하여 명시적으로 위탁한 금전과 동일하다거나, 송금인이 수취인에게 금전의 수수를 수반하는 사무처리를 위임하였다고 보아 수취인의 송금인에 대한 상계권 행사가 당초 위임한 취지에 반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2) 관련 민사사건의 진행경과에 비추어 A가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 반환거부 일시경 乙에 대하여 반환거부 금액에 상응하는 물품대금채권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A의 위 물품대금채권과 乙의 부당이득반환채권이 서로 상계적상에 있지 않았다거나, A의 상계권 행사가 신의칙 위반이나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만한 자료나 정황도 보이지 아니한다.
(3) 甲은 착오송금된 금전 4,700,000원 중 A의 위 물품대금채권액 1,108,310원에 상응한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는 송금 다음 날 반환하였고, 1,108,310원에 대해서도 반환을 요청하는 乙에게 A의 위 물품대금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하여 상계권을 행사한다는 의사를 충분히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甲이 위 물품대금채권액에 상응하는 금전에 대한 반환을 거부한 이유와 주관적인 의사를 살펴보면, 甲이 불법영득의사를 가지고 반환을 거부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 그런데도 원심은 甲의 반환거부행위를 횡령죄에서의 횡령행위와 같다고 보고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여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원심판결에는 횡령죄에서의 횡령행위 및 불법영득의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3. 기억해야 할 점
원칙적으로 착오송금된 금전이 내 계좌에 들어온 경우 신의칙상 보관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에, 영득의 의사로 그 금전을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다만, 오늘 살펴본 판결처럼 민사상 상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상계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횡령죄의 성립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판결에 자세한 근거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민법상 상계권은 형성권에 해당한 것으로 파악되어 상대방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법리는 다른 민법상 정당한 권리 행사와 결부되어 다양하게 방어권 행사의 관점에서 적용될 수 있다는데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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